1. 화성에서 온 침팬지
유인원 중에 침팬지가 있다.
침팬지는 무리를 지어 살고 있으면 그 안에는 서열이 존재하다. 수컷 중의 가장 힘이 센 자가 전체를 지배하는데 암컷 전체를 지배하고 또한 다른 수컷을 지배한다. 이들의 지배 방식은 인간과 비슷하여 우두머리는 몇몇을 친위부대를 만들어서 수족처럼 부린다. 특별히 그들에게는 암컷들과의 적당한 교미를 허락한다.
시간이 흐르고 힘이 없어지면 다른 왕이 등극하는데 그 방식은 구테타이다. 왕권에 관심이 있고 대략 서열 안에 드는 자가 은밀하게 자기 친위대를 만들어서 왕권을 빼앗는 것이다. 이렇게 왕권을 쟁취한 왕과 친위부대는 동질성을 다지는 의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그 의식이라는 것이 끔찍하다. 잡기 힘든 (그래서 홀로 협동을 통해야만 잡을 수 있는) 다른 종족의 원숭이를 산채로 잡아서 나눠먹는 것이다. 우두머리가 그것을 나눠주는데 그 나눠주는 순서와 양에 따라서 서열이 결정된다. 우리가 보통 사냥이라 하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데 이 경우는 힘의 과시와 집단의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하는 사냥이다. 왕은 항상 힘을 과시하면서 왕의 자리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항상 주변을 관찰하며 누가 구데타를 일으킬지 감시하는 것, 왕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암컷은 발정기 때에만 교미를 하는데 하나의 수컷과만 교미를 하는 게 아니고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한다. 그 이유는 자식이 누구의 자식인지를 모르게 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혈통이 확인되면 다른 수컷들에 의해서 견제 대상이 되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과 가장 닮은 동물 즉 침팬지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을 유추하곤 했다. 자본주의 세계관의 기초는 바로 힘이 약한 것은 도태되고 힘이 센 유전자에 의해서 다음 세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약한 것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강한 것에 의해 눌려질 수 밖에 없다, 강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 강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유전자들 간의 영역 확장을 위한 자연스러운 투쟁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것은 쓸모가 있고 가치가 있고 약한 것은 없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라는 세계관이 확립된다. 그들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들의 속성을 근거로 삼아서 인간의 본성은 탐욕과 이기심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을 누르고 정복하는 근저에는 바로 이런 ‘원래 인간은 탐욕을 추구하고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2. 금성에서 온 보노보
그런데 침팬지보다도 인간과 더 비슷한 동물이 발견되는데 바로 보노보(bonobo)다. 우리와 98.4%의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이 동물은 1929년 처음 발견됐을 때는 침팬지의 일종으로 알았지만 1933년 침팬지와는 다른 별개의 종으로 확인되었다. (침팬지는 96% 공유)
이들은 침팬지와 정 반대의 생활을 한다. 침팬지는 부계질서를 가지고 있고 보노보는 모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동물은 발정기 때에 성생활을 하는데 보노보는 인간과 같이 일상적인 성생활을 한다. 더 나아가 관계 유지의 도구로 성행위를 한다. 인간 이외에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보고 관계를 맺기도 하며 동성애를 하기도 하는데 힘을 사용해서 관계를 맺는 법은 없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 스킨쉽을 통해 화해하고 양보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들은 먹을 것을 놓고 다투게 됐을 때 피가 터지게 싸워 이긴 녀석이 먹을 것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은 잠시 덮어두고 서로 스킨쉽을 한다. 이렇게 해서 서로 친밀감을 느끼게 되면 싸울 생각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양보하고 싶어지고 결국 사이좋게 먹을 것을 나눠 먹는다는 것이다.
이 보노보의 출현은 ‘힘으로 대상을 누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겼던 침팬지 기준에 대해서 ‘그게 아니다. 보노보를 봐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화해와 협력을 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속성이 같이 있다는 “이의 있습니다.”가 가능해진 것이다.
<인용 시작>........................................................................
사람의 본성에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서로 다른 본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으며 이들 양극단의 속성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간다. 폭력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고, 평화와 공감은 단지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은 ‘철학이란 이름의 신화’이자 ‘과학이란 이름의 선동’일 뿐이다. 따라서 보노보의 존재는 신화 파괴이자 신선한 전복(顚覆)이라 할 만하다.
침팬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는 온통 침팬지들만 우글거리는 듯하다. 지난 30년, 세계화의 대로를 따라 흐른 것은 탐욕과 이기심이었다. 침팬지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돈 놓고 돈 먹기와 같은 ‘승자 독식의 경제’ 80퍼센트를 가난하게 만들고 20퍼센트를 살찌우는 ‘80 대 20의 사회’,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금권의 정치’는 침팬지의 본성으로 모두 용서되는 듯 했다. 세계는 넓고 개인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침팬지의 경제학’을 신주단지처럼 받들고 ‘침팬지 기업’과 ‘침팬지 정치’, ‘침팬지 언론’이 공들인 ‘침팬지의 세계화’는 난공불락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또 다른 유인원 보노보는 어디에 있는가. 침팬지에게 모두 도살됐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침팬지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 한 보노보는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보노보의 렌즈는 거꾸로 된 세상의 상을 바로잡아 준다. 침팬지의 세상인 듯 보였던 지구촌 구석 구석에는 아주 많은 보노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개인의 이기심만 있을 뿐’이라며 침팬지들이 내팽개치고 뭉개버린 공감적 사회성을 착한 힘으로 되살리고 있다. 세상이 이만큼 굴러가는 것도 보노보들의 선행 덕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침팬지가 할퀴어 놓은 사회의 생채기를 보듬는 데 그치지 않고, 도박판처럼 엉망진창인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반란’에 나선 보노보들이 있다. 이 새로운 보노보들은 침팬지 경제학의 돈독을 씻어 내고, 무한 경쟁으로 생겨난 사회적 빈틈을 채우며,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민다. (중략)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판매를 총괄하던 존 우드는 돌연 침팬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경영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아시아의 오지에 공짜로 도서관과 학교를 지어 주고, 돈이 없어 못배우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주는 보노보로 변신했다.
- 공중 보건을 공부한 데이비드 그린은 침팬지 의료 체계에 맞불을 놓았다. 그는 의료용품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에게 싼 값에 팔면서도 얼마든지 흑자를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돈 앞에 평등하지 못한 병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부자와 가난뱅이가 ‘필요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고 능력에 따라 의료비를 지불하는’ 차등 의료비 시스템을 설계했다. (중략)
보노보들은 그들 만의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는 침팬지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지 않는다. 그들은 침팬지의 방식으로 침팬지의 힘에 맞서지 않는다. 대신 헝클어진 세상을 추스르고, 그 뒤에 해법을 보여줌으로써 어수선한 사회는 지탱될 수 없고, 가지런한 세상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그렇게 침팬지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보노보들은 변회된 세상에서 어제의 해법은 내일의 변혁에 맞지 않다며, 일방적인 전복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를 통해 ‘보노보식 혁명’을 실천한다. 그래서 보노보들의 반란은 부드럽지만 강하고, 반짝이지만 지속적이고, 치열하지만 평화롭고, 작지만 아름답다.
.............................................................<보노보혁명 서문에서 / 인용 끝>
위의 글을 길게 인용한 것은 보노보의 속성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서이다. 저는 우리의 궁극적 지향이 보노보들에 의한 보노보식의 정치활동을 통해서 보노보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3. 보노보들의 행복한 정치활동, 국민참여정당
* 새로운 에너지의 출현
갑자기 행복을 화두로 꺼내니까 정치 얘기가 아니라 무슨 종교나 인생론 같은 얘기 같은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행복한 삶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게 있을까? 최소한 저에게 있어서 행복, 긍정, 낙관, 즐거움과 같은 것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은 없다. 돈을 버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다. 저는 우리가 걷고 있는 정치활동의 길이 행복한 길이면 모든 것을 떠나 대만족이다.
행복은 저 언덕 너머에 있지 않다. 행복은 우리가 걷는 길에 박혀있고 우리가 만지는 손 끝에 매달려 있다. 언덕 너머의 더 큰 행복을 좆는 사람에게는 쉬이 나타나지 않지만 행복은 그렇게 걸음 걸음에 촘촘히 박혀있다. 저는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 길이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정이 즐겁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은 결과에 낙담하지 않는다.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는 항상 낙관적이다.
행복한 몸에서는 엔돌핀이 솟아나고 나도 몰랐던 내가 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왕성한 긍정의 에너지들이 모여서 모두의 행복한 세상 건설을 향한 행진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국민참여정당이다. 침팬지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보노보들의 정치 행동, 그것이 바로 국민참여정당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 자신에게 감동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자기가 그냥 움직여진다. 한 밤중에 포스터를 붙이러 동네를 돌아다니고 술값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회를 사다가 옆사람들을 먹이면서 신나한다. 자기도 몰랐던 자기가 몸 밖으로 나와서 거리를 활보한다. 그런 나를 보며 감동한다. 그런 당신을 보며 감동한다. 제가 아는 한 위대한 사람은 긍정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그 사람만 생각해도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위대한 사람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나도 그 대열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보노보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에게 감동을 받으며 자기 성장을 하고 있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멋있어지는 삶, 흥분으로 가득 찬 생활, 그것이 국민참여정당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100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에는 아무리 짜내도 80밖에 없다. 20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래서 새로운 힘이 필요한거다. 있는거 파먹는 게 아니라 그동안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숨겨진 에너지, 보노보들끼리 합쳐야 만들어진다는 그 전설속의 에너지...... 잠시 개혁당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을 놀라게 하고 대통령을 당신시킨 후 표표히 사라졌다는 그 에너지........ 그들을 강호로 불러들이기 위해 그들의 정당이 필요한거다. 이른 바 국민참여정당//////
*침팬지정당의 속성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왜 안되냐고......... 저는 이렇게 말한다. 해봐서 안다.
가치 있는 길과 행복한 길이 갈라져 있다.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하겠는가? 저는 행복의 길을 가겠다. 살다 보면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해서 행복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힘에 부치는 활동, 자기가 잘 모르는 활동, 그래서 주체로 서지 못하고 하는 활동, 그 안에서 자기가 멋있게 느껴지지 않는 활동, 숫자로만 존재하는 활동, 이럴 경우는 아무리 가치 있는 활동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 내게도 그런 경험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열린우리당 활동이었다.
우리는 새우였다. 고래인줄 착각한 새우였는데 진짜 고래를 잡으러 갔다가 새우 등만 터지고 끝이 난 사건이다. 당시 나는 지역에서 제법 열심히 생활 정치 활동을 해나갔었다. 새우가 고래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새우 등만 터지고 끝났는데 또한 기성 정당의 속성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성 정당에서는 ‘내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이 분명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물에서 놀고 있으니 제대로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고 또한 무엇을 판단할만한 근거나 기준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소수였고 다수에 맞서 영역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당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어른들이 놀고 있는 하우스에 와서 한판 벌리자고 달려든 용돈가진 어린 애 수준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하우스에는 엄연히 룰이 있는데 겨우 용돈 나부랭이 들고 와서 룰이 어쩌니 저쩌니 하니 성가시고 귀찮고 밉지 않았을까? 포카 치는 하우스에 와서 이제부터는 고스톱으로 바꾸자고 하는 황당한 애들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들에게는 우리가 그렇게 비춰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물론 그들에게 이런 평가를 혹을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왜냐 하면 그들은 남이 싫어하는 얘기는 절대 안하기 때문이다. 표 앞에서는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게 하우스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 싸움을 하면서, 그들만의 전국 리그에까지 끌려다니면서 꽤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메인스트림을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내가 설 곳은 점점 없어졌고 종당에는 절망과 냉소를 노잣돈으로 받아 쥔 채 길 없는 광야로 밀려났다. 얼핏 보면 내 발로 나왔으나 그것은 예정된 추방이었다. 그렇게 깨지면서 얻은 게 있었는데 위에서 얘기한대로 메인스트림의 속성을 알게 되었다.
1.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그들의 궁극적 고민은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
2. 그들은 말로는 국민을 따른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지역주의적 소선거구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점,
3. 그들에게 통합이 절실한 이유는 각 지역구에서 야권의 후보가 갈라지면 자신이 당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이 얘기하는 통합은 주류의 이익을 강화하는 형태로의 통합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역할도 있고 의미도 있다. 오히려 그 비중이 너무 절대적이라는 데에 있다. 왜냐 하면 결정적으로......... 버리면 사는 순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매사에 그들은 항상 버리지 않고 사는 묘수를 생각한다. 그런 묘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역시 재산이 좀 있는 침팬지 집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자기들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칼을 들고 들어온 다른 종족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싸움이 생기고 우리는 전사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온전히 가지지는 못했다. 왜냐 하면 우리의 재산이라는 것은 우리를 존중해야만 존재하는 ‘가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전리품 또한 없었다. (물론 그들은 가치가 불편하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또한 결과적으로 큰 배움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변한 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 역시 그들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들어가서 뭘 할 수도 없다. 따지고 보면 그 안에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뭘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오늘 정운찬이 국무총리로 가는 것을 봐라. 내가 최근에 정말 이해가 안되면서 또한 이해가 되는 게 하나 있다. 민추협의 화해 혹은 동교동과 상도동의 대화합이라는 거 말이다. 상도동이 민주화세력인가? 3당야합의 순간 그거 끝난거 아닌가? 나는 돌아가신 그 분을 팔아서 그 자리를 만드는 그들이 역겹다. 세상에 미디어법 강제로 통과시키는 자들과 그걸 반대한 자들이 어떻게 화해를 하지? 지금 원수지간인데 뭘 가지고 화해를 하지? 모르겠다.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같이 술먹는지 뭐하는지..... 너무 역겨워서 생각을 안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내 안에서 분노가 자라는 걸 느낀다.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는 걸 느낀다. 나는 그래서 가급적 생각을 안해버린다.
*보노보들의 해결 방식
그래서 나는 보노보가 좋다. 보노보들의 평화적 해소 방식이 좋다. 그리고 그런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는 ‘그들보다 더 악랄하게.....’라는 의식이 있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이 표현을 가지고 잠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취기도 있고 해서 진전은 안되었지만 나는 내 안에 있는 이런 표현들이 내가 삶에서 지향하는 밝음, 맑음, 희망, 사랑 등의 것들을 탁하게 만드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내가 지향하는 그것들은 악랄해져서는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악랄한 속성을 가지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은 그 표현은 ‘끈질기게, 혹은 지치지 않고 쭉........ 혹은 그들보다 더 지독하게.......’ 라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나도 그런 의미로 쓴 것이라고 생각을 당연히 한다. 그런데 그 표현의 뜻도 그렇고 말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탁한 기운도 그렇고 해서 나는 지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에는 이로, 칼에는 칼로...’라는 말이 생각난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고 또 예전에 흔히 생각해온 사고패턴이기도 하다. 당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를 제공하는 이 말 보다는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말이 훨씬 이성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에 가까운 것 아닐까? 비록 당한 사람에게 보상심리로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말이다. 전자발찌를 채우고 사형제를 부활하는 것이 당장의 작은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또 다른 공포를 심어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보복심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감성을 억압하는 침팬지적 해결 방식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진짜 마무리다.
우리가 가는 길은 보노보의 길이기 때문에 침팬지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민주당과 하나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침팬지들은 정당의 목적을 집권에 둔다. 그러므로 항상 압도적 다수로부터의 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 언제든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꾼다. 모로 가도 서울을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결과를 위해서는 절차는 탄력적으로 운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동영을 보라) 양당제를 선호한다. 경쟁자가 적은 양당제를 선호하며 그래서 국민들의 다양한 선호도를 불편해 한다. 대의를 위해서 좀 참아주길 원한다. 당연히 연립의 철학이 부재하며 연립의 경험이 일천하다. 당연히 다양성을 모른다. 정치자영업자들이 활동의 중심에 서 있다.
보노보들은 정당의 목적을 정책의 실현에 둔다. 그래서 정책의 차이로 정당이 나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당제를 선호하며 따라서 직접 집권보다 연립정부 수립에 방점을 둔다. 비슷한 것에 대해서 비판과 대립보다는 협력을 선호한다. 물리적 결합을 통한 압도적 다수만들기 보다는 연대를 통한 정책의 실현을 추구한다. 베짱이 두둑하고 속도가 더뎌서 남의 애를 태운다. 평범한 시민들의 적극 참여가 힘의 근본이다. 자기들이 좋아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 힘은 일당 백이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고 했던가. 나 이제 민주당 욕 안한다. 내 일도 바쁜데 남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관심도 없다. 보노보들....... 지역에 많다. 거기서 배웠다. 노짱이 나를 깨웠고 지역이 나를 다시 세웠다.
